인생을 살다보면, 반드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질문은 "나는 누구인가?"라는 질문이다. 파스칼은 '인간은 생각하는 갈대'라 말하기도 했으며, 예수는 '자신의 하나님의 아들이자, 구세주이다'라고 말했다. 또 '공수래 공수거'를 외치는 불교에서는 사람은 업의 대상이다라고 표현한다. 사실 역사상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. 이제부터 그 이유와 이를 통한 해답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.
우리가 듣는 영어 단어 중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무엇일까? 한국말에는 주어가 자주 생각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, 주어가 항상 표현되는 영어에서는 명확하다. 바로 '나'라는 표현의 'I'와'너(당신)'이라는 표현의 'You'이다. 때때로 '그' 또는 '그녀'라는 표현도 나오지만, 앞서 나온 두 단어에 필적할 수 없다. 한국말로 "배고파"라는 말을 번역해 보면, "I'm hungry!"라고 표현되고, "배고프니?"라는 표현도 영어로는 "Are you hungry?"로 번역되기 때문이다. 이처럼 영어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시대는 '나'와 '너'가 분명히 구분되는 이원주의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.
예전 '우리'나라에서는 '나'와 '너'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. 영어권에서는 잘 쓰지 않는 '우리'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. 우리나라, 우리민족, 우리회사, 우리집, 우리아빠, 우리 엄마, 우리아들, 우리딸, 우리형, 우리누나, 우리동생, 우리편.... 다 세자면, 며칠 밤을 꼬박새야 할 정도로 '우리'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. 어째서일까?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만 우리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일까?
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'동방예의지국(東方禮義之國)'이라 불리울 정도로 예의를 중시한 나라였다. 하지만, 이 당시의 예절은 지금과 같이 나와 타인을 구분지어 서로를 존중한다는 수준의 예의가 아니었다. 너와 내가 한 핏줄, 한 몸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은 곧 너를 사랑하는 것이고, 이것은 또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었다. 이런 하나됨이 기본이 된 사회에서는 도둑도 없었고,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도 없었고, 그저 자연에 만족하고 자족하며, 그 자연안에서 자연스러움을 누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즐겼다. 그 속에서 더불어 나눠주고, 나눠받고, 나눠먹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. 이는 품앗이, 두레, 함께 찌개나 국을 먹는 문화,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OO계 등이 형성되게 된 근간이다.
그러나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, 원래 우리민족이 지닌 순수한 본질들은 점차 깨어지게 되었다. 사회에서는 각종 범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, 조직구조는 부패하기 시작했으며, 백년지대계라 불리는 교육은 그 순수성을 잃기 시작했다. 그렇게 지내온 100여년 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이 자리잡았다. 이제는 '너'와 '나'를 구분할 뿐만 아니라, 나만 또는 내 가족만 소중하다는 생각이 온 사회에 넘쳐나기 시작했다. 사실 '나'와 '너'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. 다만 '우리'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'나'와 '너'는 결국 승자없는 싸움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.
우리가 원래 '하나'였다는 사실만 깨닫고 그대로 살아간다면, 어떤 일이 벌어질까? 내 옆에 사람이 나이고, 친구가 나이고, 모든 사람이 결국 나다. 아니, 다시말해 모두가 '우리'라는 이름의 하나일 뿐이다.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. 이제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. "나는 누구인가?"